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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로자와 아키라

201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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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현대영화계의 셰익스피어 『구로자와 아키라』

들어가며
   2006년 병술년은 좋은 소식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2005년엔 우리들을 암울하게 하였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쌀개방, 비정규노동자들, 교원평가, 사학법개정문제, 줄기세포 파문, 도청 파문 등등...그래서 새해 첫 테마로 깔끔하게 영화감독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동양인으로서 외국의 거장들의 스승으로까지 여겨진 감독이니만큼 충분히 다루어 볼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쪼록 가벼운 마음으로 술술 읽어 보시길......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여정
   “구로자와 아키라”감독은 1910년 3월 23일 동경 시나가와에서 태어나 도수샤 서양화반에서 그림을 배웠고, 일본 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변사로 일하던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어린시절부터 영화를 보며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학에 심취했고, 문학, 미술, 영화, 정치, 철학 등을 공부했으며, 1942년까지 시나리오에 전념하며 야마모토 카지로 감독을 비롯해 여러 작품의 조감독으로 일했는데, 구로사와의 데뷰작은 <스가타 산지로>입니다(2차대전 중 군국주의 정부의 엄격한 관할 아래, 메이지 유신 때를 배경으로 젊은 청년 스가타 산지로가 유도에 입문하여 고수가 되어가면서 유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어른이 되어 가는 이야기를 각색, 연출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성공으로 만들어진 속편은 구로사와에게 다시는 속편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할 정도로 실패하였습니다).

   구로사와는 193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운동권 학생과 그를 사랑하는 한 강인한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주의에 빠지는 <나의 청춘에 후회는 없다>, 한 공장 노동자와 그의 약혼녀의 어느 일요일 데이트를 통해 전후 일본인의 황폐함과 고통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멋진 일요일>, 구로사와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주정뱅이 천사>,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들개>, 옐로우 저널리즘을 비판한 <추문> 등이 <라쇼몽>을 만들기 전에 만들었던 10여편의 작품들 중에 속합니다.

전성기
   무성영화의 영상적 전통과 소비에트 영화의 다이나미즘, 헐리우드 영화의 황금기를 교묘하게 합쳐놓은 스타일 위에 영웅에 대한 이상주의를 담아내는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50년대 초에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 주요 수상경력 및 작품
1951 베니스 그랑프리 <라쇼몽> / 1952 베를린 감독상 <이키루> / 1953 베를린 은곰상 <이키루> / 1954 베니스 은사자상 <7인의 사무라이> / 1958 베를린 은곰상 <거미의 성> / 1976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데루스우잘라> / 1980 깐느 그랑프리 <카케무샤> / 1986 영국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 <란>

   <라쇼몽>
        51년 <라쇼몽>으로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및 그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구로자와의 수상 경력은 서구 영화계와 지성계에 전광석화 같은 충격을 주면서 세계영화사에 굵은 줄기를 세우게 되는데, 도덕적 가치와 진실, 주관적 진실과 리얼리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그 당시의 일본영화가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또 그 당시 세계영화가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깊은 맛을 담고 있었습니다. <라쇼몽>은 인간은 자신의 주관적 진실에 아무리 충실하다고 해도 결코 진실 그대로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인식론적 주제를 명확히 표현하였는데, 2000년 베니스 영화제 50주년에서도 의문의 여지없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국제 영화계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에게 인간의 이중적인 오묘한 심성을 가식 없이 일관되게 추구하였다고 평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지금 보아도 여전히 동시대 범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연출가라는 극찬이 줄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일본의 권위있는 아쿠다가와 문학상을 탄생시킨 일본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원작 소설 <라쇼몽>과 <숲 속>을 근간으로 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배경은 일본의 헤이안 시대인 11세기. 살인 사건에 관계된 산적과 무사 그리고 그의 아내와 목격자인 나뭇꾼이 등장하여 각자 자신의 입장과 행동에 따른 주관적인 해명으로 진실을 윤색합니다. 구로자와는 한 가지 사건을 두고 각각의 개인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증언을 하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연출론을 밝힌바 있습니다(현재까지도 이 작품은 주제의식의 강렬함, 뛰어난 형식미로 인해 영화학도들에게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7인의 사무라이>
        54년에 구로사와는 그의 또다른 걸작을 완성하는데, 산적들의 습격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사무라이를 고용하여 산적과 맞선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서부영화와 유사한 화법에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원 형태로 연출한 '원구도'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일본 영화사상 베스트 10 앙케이트에서 지난 20년 내내 베스트 원 영화로 추천되고 있고, 존 스터지스에 의해 <황야의 7형제>로 웨스턴으로 각색되어 리메이크 되기도 하였습니다.

   구로사와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50년대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는데, 60년대를 시작하는 <악인이 더 편히 잔다>는 59년에 설립된 구로사와 프로덕션의 첫번째 작품으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고 복수하려는 아들을 주인공으로 미스테리 형식을 택해 만든 영화입니다. 사무라이 활극영화 <요짐보>는 전세계적으로 성공하였으며, 셀지오 레오네는 이 영화를 무단 각색하여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어 스파게티 웨스턴 붐을 일으켰고, 그 후 96년 월터 힐은 하드 보일드 영화 <라스트맨 스탠딩>으로 각색한 바 있습니다.

고난기
   그러나 구로사와는 65년 <붉은 수염>이후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는 일본영화계가 높은 제작비에 비해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기피했기 때문이었고, 어려움에 처한 구로사와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영화를 만들고자 하였는데 57년엔 20세기 폭스사와 <도라 도라 도라>를 계획하였습니다만, 이 영화의 감독직에서 해임된 후 크게 자존심이 상한 구로사와는 최초의 칼라영화인 70년 <도데스카덴>마저 실패하자 71년 자살을 시도하였고 미수에 그쳤지만 이는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도약
   위와 같이 침묵에 들어간 구로사와를 다시 은둔으로부터 불러낸 것은 스스로 ‘영화의 제자’를 자처하는 스필버그와 코폴라, 루카스(이름만으로도 쟁쟁한 거장들입니다)였는데, 그들의 주선으로 20세기 폭스의 자본을 받아 장대한 스펙터클 시대극 <카게무샤>를 만들었습니다. 흥행기록을 갱신하였으며 깐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상업적, 비평적 성공으로 노년의 구로사와에게는 다시 한번 영화 인생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을 16세기 내란 시기를 배경으로 각색하여 70미리 화면 위에 현란한 색으로 담아낸 <난>을 만들고 난 구로사와는 90년에 어린 시절의 꿈을 8개의 에피소드에 담은 비주얼 에세이 <꿈>을 소니 사의 지원으로 하이테크 비전으로 작업하면서 첨단 미학과 테크놀로지를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20년 만에 다시 일본의 자본으로 만든 <8월의 광시곡>에서 일본인의 시각으로 원폭 투하의 악몽을 그린 그는 이어 일본의 유명한 수필가 우치다 하켄의 삶을 영화화한 <마마다요>를 만들었고, 80살이 되던 1990년에 아카데미 특별 명예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카게무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철저한 고증을 앞세운 볼거리에 국한 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역사는 배경으로서만 기능할 뿐 내러티브는 세익스피어적인 상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미천한 사형수 신분에서 권위의 최정점에 올라서 있는 군주의 대역을 맡아야 하는 좀도둑의 심리 변화와 역할 상승은 영화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기둥입니다. 처음엔 그림자(카게무샤)로 시작하지만 그림자는 어느새 실체와 한 몸이 되어 버리면서 외적 압력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고, 그림자(카게무샤)가 실체(군주 신겐)가 되어 가는 과정은 수염을 쓰다듬는 방법 따위의 작은 몸짓을 흉내내는 것에서 출발하여 옷차림과 말투를 바꾸고, 기호를 맞추어 마지막엔 머리속 생각까지 완전히 바꿔 지게 되는데 이는 아슬아슬한 위태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완벽한 흉내내기는 인정받지만 진심으로 일체되는 것은 불허받는 성역인데 그 성역을 넘으려던 카게무샤의 최후는 자신을 군주의 다름 아닌 것으로 믿어 버리면서 죽음으로 끝나게 됩니다. 오랜 침묵 후에 <카게무샤>를 통하여 구로사와 아키라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무엇이며, 그 경계가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냐는 것인데, 경계란 허물어질 때 오히려 의미있는 것이며, 허물어질 것이라면 가치 없는 것이라는 아키라의 대답이 영화에는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구로사와 작품중 첫 번째라는 것은 위와 같은 이 영화의 내연과 외연을 생각할 때 충분히 이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로사와 영화의 매력 포인트
   일본영화사에 있어서 구로사와 감독만큼 그 창작의 비밀에 대해 많은 논란과 비평의 대상이 되었고, 또 프란시스 코폴라,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세계적인 감독까지도 존경해 마지 않았던 영화작가는 없었습니다.

   첫째, 구로사와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7인의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영상미학의 압도적인 약동감입니다. 바로 이 점이 구로사와를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장 코폴라,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들이 스승으로 우러르며, 세계 각국의 감독들까지도 경애해 마지않는 최대의 이유일 것입니다. 그의 약동감은 항상 3대의 카메라를 이용하는 구로사와 특유의 촬영방식에 있습니다. 하나의 장면(ONE SCEAN)을 동시에 세 대의 카메라로 세가지 앵글인 업(UP), 미디엄(MIDIUM), 롱샷(LONG SHOT)으로 촬영하는 것인데, 마법과 같이 세 개의 필름을 맞추어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보여줍니다.

   둘째, 영화 작품세계의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강인함입니다. 구로사와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회악을 증오하고 강력한 정의감을 바탕으로 책임감 넘치는 인간으로서 사무라이 정신을 표출시키고 있습니다.

   셋째, 구로사와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인간애라는 휴머니즘입니다. 구로사와 영화는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 존재와 운명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보편적 영화언어로 그려내고 있고, 그의 작품 여기저기에서 흘러넘치는 유머, 인간통찰의 예리함이 설교적인 경향을 극복하고, 결코 오락성을 잃지 않는 휴머니즘 영화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대담하면서도 정교한 연출입니다. 구로사와의 이름과 일본영화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린 <라쇼몽>에서 당시로서는 태양을 상대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는 것조차 터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히노마루(일본국기)와 같은 태양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미후네와 교 마치코의 키스신을 찍고 싶다"고 주문할 정도였고, 그의 이런 대담한 주문에 응한 미야카와 이치오 카메라맨은 고심끝에 촬영에 성공하였으며, 그것은 훗날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격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7인의 사무라이>의 라스트 신에서 호우, 흙탕투성이 속의 전투장면, <요짐보>에서 처음 시도한 '사람이 잘려 죽을 때의 소리', <쓰바키 산주로>에서 피가 솟구친 장면, <천국과 지옥>에서 도카이도 신칸센 특급편 실내 촬영 등은 구로사와 감독의 과감한 챌린지 정신이 낳은 명장면들이었습니다.

나오며
   구로사와의 만년의 작품은 일본영화계 전체 불황 속에서 반드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구미 등 해외에서의 평가는 쇠퇴할 줄 몰랐는데, 세계적인 거장 구로사와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영화는 일본 국내에서는 별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로사와가 남긴 위와 같은 신화는 영화사적 의미상 이제 후세에도 계속 전해질 것임에 틀림없고,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20세기 일본영화사가 낳은 쾌거라 생각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감독 중에서도 헐리우드를 휘두르는 멋진 감독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질투가 듭니다). 구로사와는 그만의 미학과 테크놀로지의 적절한 조화를 시도함으로써 독창적 세계를 헐리우드에 여실히 알렸던 감독이었고, 영화인이 그를 존경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독창적 세계에 매료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구로사와의 선구자적 개척정신과 독창적 세계에 무조건 찬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완성 당시만 해도 일본 안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쳤던 <라쇼몽>이 서구인들에게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그의 영화가 색다른 동양문화였기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주제의식과 영화적 미학의 뛰어남 때문이었음은 지난 82년 베니스영화제 역대 대상(황금사자상) 수상작중 최고 작품으로 선정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섣불리 그의 독창성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면 그가 영화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남기려 하였던 메시지를 자칫 곡해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이우
변호사 심영대


[댄스스포츠코리아 2006. 1,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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