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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1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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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한 두어달 쯤 전에 개봉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를 다들 보셨는지...‘Million Dollar Baby’는 1달러샵에서 발견된 백만 달러짜리 가치의 물건인데 ‘진흙 속에서의 진주의 발견’이라는 어감으로 받아들이시면 되실 듯. 할리우드 도박사들이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에비에이터(The Aviator)'와 작품상, 감독상을 나누어 가질 것이라고 한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둔 바로 그 영화이다.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때 잘 나가던 권투 트레이너였지만,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나이든 트레이너다. 은퇴복서인 유일한 친구 스크랩(모건 프리먼)과 낡은 체육관을 운영하던 그에게 어느 날 매기(힐러리 스웽크)라는 여자복서 지망생이 찾아오고, 프랭키는 그녀에게 ‘31살이 된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싱을 꿈꾸어도 안된다’며 냉정하게 그녀를 돌려보낸다. 그러나 권투가 유일한 희망인 매기는 매일 체육관에 나와 홀로 연습을 하고, 결국 그녀의 노력에 두 손 든 프랭키는 그녀의 트레이너가 되기로 한다.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는 프랭키의 가르침 속에 훈련은 계속되고, 그녀는 시합 때마다 다 이겨서 상대의 코치들이 그녀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랭키는 돈을 줘 가면서 그녀에게 권투 시합을 안겨준다. 때로는 상처를, 때로는 격려로 함께한 프랭키와 매기는 어느새 서로에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정을 일깨워주며 아버지와 딸 같은 관계로 발전해 간다. 마침내 매기는 타이틀 매치에 나가기에 이르는데, 뜻하지 않은 치명적 사건이 발생한다. 상대선수는 반칙을 자주 하고 매너가 없기로 유명한 선수. 여러 반칙공격을 당하다 결국 KO로 이기게 되지만 상대선수가 갑자기 날린 주먹에 넘어지며 의자의 모서리에 목을 부딪힌 매기는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녀는 썩어가는 다리를 자르게 되고,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다며 프랭키에게 편하게 죽여 달라고 하지만 프랭키는 거절한다. 그 후로 매기는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고통의 시간만이 찾아오고, 프랭키는 결국 그녀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직접 그녀를 안락사시킨다.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영화. 그러나 ‘록키’류의 영화가 아니라 권투선수가 등장하는 ‘드라마’임과 동시에 ‘안락사’라는 인간 역사 속에서의 오랜 물음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면서 미국의 사회운동가 및 보수논객들로부터의 거센 항의 및 자살 방조와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논쟁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샤이보
   지난 3월 31일 미국에서는 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아오던 테리 샤이보(41, 여)가 법원의 결정으로 영양공급 튜브를 제거한 지 13일 만에 숨진 일이 있었다. 과체중이던 샤이보는 1990년 무리한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심장 박동이 잠시 멎는 바람에 뇌를 다쳐 식물인간이 되었고, 그녀의 남편 마이클 샤이보가 6년 전부터 법원에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해 줄 것을 청원한 이후 이 사건은 이를 막으려는 그녀의 부모와의 법정공방을 거치며 안락사 논쟁을 새로이 야기하였는데, 마침내 같은 달 18일 플로리다주 항소법원의 명령에 따라 튜브가 제거되었다(세번째 제거). 마이클 샤이보는 아내가 인공장치에 의해 연명하는 걸 원치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테리의 친정 식구들은 영양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살인행위라며 다시 튜브를 삽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테리를 살려야 한다는 지지자들이 테리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병실로 들어가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고, 2003. 10. 15. 두 번째로 튜브가 제거되자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의 주도로 튜브재삽입을 명령하는 ‘테리의 법’이 통과되기도 하였으며, 세 번째 튜브 제거 후인 2005. 3. 21.에는 미연방의회에서 203대 58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테리 샤이보 사건을 연방법원이 재심의 하도록 하는 특별법이 통과되고 부시 대통령이 급히 서명하기도 하는 등 테리를 살리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1999년에는 미국 CBS 시사 프로그램 ‘60 Minutes’를 통해 안락사 옹호주의자(assisted suicide advocate)인 잭 케보키언 박사가 루게릭 병으로 고생하는 말기 환자를 직접 안락사시키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방영되어 미 전역에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약 8여년 동안 120여건의 안락사에 관여해 ‘죽음의 의사’로 불리던 케보키언 박사는 2급 살인죄를 적용, 중형을 선고 받았다. 또한 미국 뉴져지주의 퀸란(Karen Ann Quinlan, 21세 여)은 1975년 4월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술과 약물로 호흡정지가 있은 후 식물인간이 되었고, 퀸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주겠다고 결심하여 의사에게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의사가 이를 거부하자 퀸란의 후견인으로서 생명유지장치를 뗄 권한을 자기에게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 대법원은 1976. 3. 31. 아버지의 주장을 인정하여 입원한 병원의 윤리위원회 승인을 얻어 장치를 제거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

안락사논쟁
   우리는 여기서 고민거리와 부딪힌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 vs. ‘누구도 중단시킬 수 없는 신성한 생명’. 안락사의 허용은 바로 생명을 인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살인을 공인하는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지 남용, 악용의 소지가 있고, 우리의 정상적인 윤리감정에 거슬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이 문제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인가? 현실적인 문제, 인간의 의술은 급속도로 발달했지만 그 속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생을 마감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지는 의료비 부담 문제 등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안락사는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나는 누구에게도 독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 비록 그렇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더라도 - 그런 계획을 제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일단 안락사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생명 종료로서의 죽음은 크게 자연사와 인간의 간섭이 개입된 비자연사로 나눌 수 있고, 비자연사는 다시 사고사와 인간의 의도가 개입된 의도적 죽음이 있다. 안락사는 자연사가 아니고, 또 사고사도 아니며, 자살도 타살도 아니다. 어원적으로 안락사(euthanasia)는 헬라어 eu(좋은, good, well)와 thanatos(죽음, death)의 합성어로 ‘좋은 죽음’을 의미하고, 웹스터 새국제사전(New International Dictionary, 1976)에서는 안락사를 ‘치유될 수 없는 상황이나 질병으로 커다란 고통이나 어려움을 안고 있는 사람을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고 죽여주는 행위나 관행’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법학, 의학, 철학 등의 학계에서의 대체적 분류방식에 따르면, 안락사는 우선 환자에게 직접 어떤 행위(몰핀, 포타슘 등의 치사량 주사)를 함으로써 죽도록 하는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와 환자에게 필요한 어떤 의학적 조치를 하지 않거나 인위적인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자연의 경과에 따라 죽도록 하는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a)’로, 행위자의 행위 또는 무위가 환자 사망의 직접적 원인인가에 따라 ‘직접적 안락사(directive euthanasia)’와 ‘간접적 안락사(indirective euthanasia)’로 나눈다. 또 환자 본인의 자발적 동의가 있는 ‘자의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 반대의사를 표현한 환자에 대한 안락사인 ‘반자의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 그리고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비자의적 안락사(nonvoluntary euthanasia)’로도 나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주는 의미에서 적어도 소극적 안락사에 대하여는 관행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추세에 있는데, 미국은 각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의 주가 환자가족의 동의 등 엄격한 요건 아래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 안락사(또는 존엄사)는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호주나 일본의 경우도 관행적으로 엄격한 요건하에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네델란드는 종래 판례를 통하여 엄격한 요건하에 인정하다가 2000년 11월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의 안락사 논쟁은 다른 외국에 비하여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었으며, 성문형법상 고통경감을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는 형법상 촉탁·승낙 살인죄 또는 자살방조죄가 성립된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의사협회는 2001. 11. 15. 소극적 안락사의 허용을 포함하고 있는 의사윤리지침을 확정·발표하였는데(의사윤리지침 제30조;의학적으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자율적 결정이나 그것에 준하는 가족 등 환자대리인의 판단에 의해 환자나 대리인이 생명유지 치료를 비롯한 진료의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할 경우 의사가 수용할 수 있다), 이는 소극적 안락사가 문제되었던 ‘보라매 사건’이후 발표된 것이어서 안락사에 대하여 소극적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위 윤리지침이 합법적으로 수용될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라매사건’은 치료비의 지급여력이 없던 가족들이 환자의 퇴원을 요구하자 처음에는 이를 거부하던 의사들이 환자를 퇴원시켜 준 사례에서 제1심 법원이 의사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사건인데, 이에 대법원은 의사들을 ‘살인방조죄’로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유지한 바 있다(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도995 판결).

   위 판결이 소극적 안락사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고, 위 사안이 외국에서 인정되고 있는 소극적 안락사의 요건을 갖춘 사안이었는지 여부에 대하여도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위 대한의사협회의 윤리지침이 위 판례와 더불어 (소극적)안락사라는 주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려 한 것만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최근 웰빙(well-being)열풍이 일고 있는 와중에 웰다잉(well-dying)의 중요성 또한 그 열풍에 편승하고 있는 분위기다. 안락사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주장하고 그에 따른 엄격한 요건을 제시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 법제화에 있어서는 종교적·윤리적 측면 및 사회공익의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인명경시 풍조가 개선되어야 하고, 특히 사회, 경제적 약자들, 장애인과 노인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안락사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호스피스(hospice)라는 것이 있다. 불치의 병으로 인한 고통과 임박한 죽음의 그림자로 불안해하는 환자들에게는 일반 병원의 딱딱한 분위기와 생명연장장치 등의 장비들보다 오히려 즉음의 공포를 잊게 해주고, 통증을 적절히 조절해 주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특수한 환경이 요청되고, 그것이 바로 호스피스 치료이다. 인간은 살아갈 권리가 아닌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헌법상 행복추구의 기본권), 여기서 모든 생명의 유지가 다 행복한 것이 아니고 생존 자체가 고통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러한 고통을 최대한 완화시키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볼 때, 앞으로 계속될 안락사 논쟁에 대한 대안으로 호스피스의 활성화를 통한 환자보호가 현 시점에서 오히려 더욱 절실함을 느낀다.

                                           

법무법인 이우

변호사 심영대


[댄스스포츠코리아 2005. 6,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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