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두우
두우소개
자료 및 소식

자료 및 소식

[칼럼] 어퓨굿맨

2010.04.26

58ad0e8310d11dea8220b0faf5ecb296_1648802913_2887.jpg
[법과 영화]

어퓨굿맨(A Few Good Men)

  변호사로서 상대방과 타협할 것인지 끝내 판결까지 받을 것인지를 선택하여야 하는 문제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판결 보다는 화해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평범한 진리에도 불구하고 법률가로서 실무를 접하다 보면 과연 어떤 때 상대방과 화해하여야 하고, 어떤 때 판결로써 승리를 이끌어 낼지를 결정하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판결과에서 정의가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 편이 정의라고는 판단되지만 승패를 예상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 오로지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All or Nothing)을 안고서 끝까지 재판을 끌고 나가 판결을 받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때로 만용일 수 있다는 것이 법률실무에서 종종 부딪치는 현실이다.
  더구나 형사재판절차에서 위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심정이다. 피고인은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는 반면, 수사기관에서 제출한 증거나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증거에다가 실무상 피해자측의 주장이 ‘증거의 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적 한계 등을 감안하여 법률가로서의 경험상 유죄판결이 예상되는 경우 피고인에게 합의를 종용하며 소위 ‘타협하라’고 설득한다는 것은 때때로 가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래 전에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어퓨굿맨(A Few Good Men)이라는 할리우드 영화를 매우 감명깊게 본 일이 있다. 당시 나는 법률가로 새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던 시기였는데, 사건을 대하는 법률가의 자세가 어떠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좋은 영화로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있다.

  사건은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미 해병대 기지에서 ‘산티아고’라는 사병이 사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산티아고 일병은 미군에서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관타나모 기지에서의 고된 생활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정부와 군 고위인사들에게 ‘자신을 다른 곳으로 전출시켜 주면 관타나모 해병기지에서 쿠바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의 전모를 밝히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부대의 명예를 목숨 보다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그들만의  신조를 어긴 배신자’로 낙인찍혀 상관의 지시를 받은 두 병사로부터 ‘코드레드(Code Red)’라는 특수기합을 받다가 숨진다.
  결국, 기합을 준 두 병사는 살인․살인예비 및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되고, 여기에 군복무 경험은 짧지만 하바드 로스쿨을 나온 젊고 유능한 타협의 명수 캐피 중위(탐 쿠루즈 역)가 변호인으로 선정된다. 해군 당국이 그를 택한 것은 미국 국가안보회의 위원 물망에 오를 정도로 소위 잘나가는(?) 제셉 대령(잭 니콜슨 역)이 관타나모 해병기지 사령관인 점을 감안하여 검사와 적당히 타협하여 시끄럽지 않게 사건을 마무리 지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뛰어난 법률가는 아니지만 정의에 대한 열정과 투지 하나로 뭉친 조안 켈로웨이 소령(데미 무어 역)이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캐피 중위는 해군에 입대한지 9개월 동안 단 한번도 법정변론 없이 검사와 타협(Plea of Bargaining)만으로 44건을 해결한 신참 법무관인 반면, 켈로웨이 소령은 검사가 구류 15일을 구형한 단순 음주소란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2개월간에 걸쳐 무려 31명이나 되는 증인을 신문하고도 끝내 검사 구형대로 판결을 선고받은 일이 있는 등 투지와 열정은 있으나 성과는 별로 신통치 않은 고참 법무관으로, 최근 2년간 총 3건의 변론을 맡았을 뿐이다.
  한편, 캐피 중위는 타협의 달인답게 사건의 진상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우선 검사를 만난 자리에서 불과 45초만에 징역 12년을 조건으로 혐의를 시인하기로 타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켈로웨이 소령은 사병의 죽음이 ‘코드레드’라는 특수기합에 의한 것이며, 이는 사령관의 명령에 의한 것이므로 무죄라는 주장을 편다.
  반면, 캐피 중위는 사령관이 ‘코드레드’를 지시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검사와 타협하지 않을 경우 최소 종신형이 선고될 것이라며 혐의사실을 시인하고 징역 12년으로 타협하자며 사병들을 강력하게 설득하다가 거부당하고, 켈로웨이 소령으로부터는 ‘군복을 입은 사건 브로커’라는 힐난까지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변론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병들의 강력한 타협 거부 의지와 켈로웨이 소령의 열정에 이끌려 반신반의 속에 정식재판에 들어가지만, 사령관이 ‘코드레드’를 지시하였음을 증언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관타나모 기지 부사령관이던 마킨슨 중령이 자살하는 등 재판은 미궁 속에 빠지고, 게다가 보조변호사인 샘 와인버그 중위 마저 유죄를 확신하며 동료를 죽인 사병들을 변론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이 장면에 이르서는 캐피 중위의 변호인으로서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검사와 타협을 거부함으로써 징역 12년에 그칠 사건을 종신형으로 몰고 간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는 변호인측에서 ‘코드레드’를 암시하자 형량을 징역 2년으로 낮춰줄 수 있음을 암시한 일도 있는 터였다.
  그러나, 감독은 관객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극적인 반전을 시도한다. 캐피 중위는 잘못될 경우 소위 잘나가는(?) 제셉 대령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해군에서 불명예제대를 당하는 것은 물론 변호사 자격 마저 박탈될 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떠안은 채 ‘코드레드’를 지시하였다고 생각되는 관타나모 해병기지 사령관 제셉 대령을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는 도박을 감행하게 되고, 신문과정에서 해병과 국가에 대한 잘못된 신조로 똘똘 뭉쳐진 제셉 대령의 광기(狂氣)를 자극하는데 성공하여 살인 및 살인예비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이끌어 낸다.
  제셉 대령은 미국을 지탱시켜 주는 힘은 강력한 군사력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산티아고와 같은 ‘나약한 해병’을 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코드레드’를 지시한 것은 군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캐피 중위 같은 전투 경험도 없는 애숭이 법무관(감독은 배심원 9명도 전원 전투 경험이 없는 장교로 설정하고 있다)이 판치는(?) 법정에서 ‘미국을 지키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이 증인으로 소환되어 죄인처럼 신문당하는데 격분한 나머지 자제력을 잃고 자신이 ‘코드레드’를 지시하였음을 실토하게 된다.

  영화 속의 캐피 중위와 켈로웨이 소령은 우리 법률가들에게 무엇인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법률가로서 캐피 중위는 불투명한 사건에서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눈 앞의 실리(實利)만을 쫒아 타협에 주력하는 타입이었던 반면, 켈로웨이 소령은 실리(實利)는 접어둔 채 무모할 정도로 오로지 법률가로서의 투지와 열정에만 몰두하는 타입이다.
  법률가로서 기본적으로 정의에 대한 투지와 열정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때로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타협할 줄 아는 탄력성도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실리(實利)를 염두에 두지 않는 법률실무란 그 설 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우선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자명해 질 것이다. 여기서 나는 법률가의 한사람으로서 그동안 결과에 지레 겁을 먹거나 잘못된 예단에 빠진 나머지 ‘실리(實利)’라는 변명 속에 숨어 진실 보다는 타협에 몰두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재판이 끝나고 캐피 중위 마저 떠난 아무도 없는 영화 속의 마지막 법정장면에서 나는 문뜩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로브 라이너 감독은 살인 및 살인예비 혐의로 기소된 사병들이 무죄임을 밝히면서도 상관의 부당한 명령으로부터 연약한 동료를 지켜주지 못한 직무유기죄의 책임만은 면할 수 없음을 단호히 선언함과 동시에 미국을 지켜주는 힘은 제셉 대령이 믿고 있는 강력한 군사력이 아니라 정의가 살아 숨쉬는 법정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  오 종 윤> 

목록
arrow_upward